1) 명동 큰손과의 만남
고려증권에 근무하는 동안 나는 거의 매일 객장에서 하루 30분 정도씩 시황방송을 했다.
내가 시황방송을 할 때 전망이 맞든 틀리든 고객들에게 인기는 아주 좋았다.
심지어 내가 하는 방송을 듣기 위해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도 많았고,
직접 오지 못하는 다른 증권사 고객들이 우리 회사로 전화를 걸어 수화기 상으로 내 방송을 듣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그 당시에는 대부분 객장에 나와서 주식투자를 할 때였다.
또한 증권사 직원의 입장이면서도 신문에 광고를 내고 수시로 상공회의소 강당을 빌려 공개강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자 MBC에서 라디오에 고정적으로 출연해 달라는 제의가 들어왔고, 그 후 약 2년간 라디오 방송을 통해 계속 시황설명을 했다.
이렇게 유명세를 타고 있을 때, 내 인생을 또 한번 소용돌이로 몰고 갈 운명적 만남이 다가오고 있었다.
고려증권 울산지점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인 1994년 10월의 어느 날, 다른 증권사에서 근무하고 있던 한 후배가 그 동안 나를 쭉 지켜보았다며 이런 말을 했다.
“선배님, 내가 명동에 있는 큰손 한 분을 잘 알고 있는데 소개해 드릴까요? 이 좁은 데 있지 말고 큰물에서 한번 놀아보세요.”
한 달 후쯤 어느 토요일 저녁, 나는 드디어 L회장을 서울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그리고 그 날 L회장 집에서 밤을 꼬박 새우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일요일 아침에 울산으로 다시 내려왔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인 월요일(11월 마지막 주) 새벽에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깜짝 놀라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내다.”
내라니? 그 순간 그 음성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바로 그저께 토요일 저녁에 만나 어제 새벽까지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던 L회장이었다.
L회장은 이야기를 하면서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었다.
“앞으로 인연이 되면 언젠가 서로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고, 다시 만나게 되면 내가 말을 놓겠습니다.”
“인연이 되면 언젠가…….”라고 말했기 때문에 최소한 몇 달 후에나 만나 볼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연락이 오다니,
순간적으로 내 머리 속에는 뭔가 굉장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거의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네, 회장님..”
“내하고 같이 일해 볼래?”
너무나 뜻밖의 말이었다. 이 꼭두새벽에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무엇을 망설이랴. 내 인생에서 큰 돈을 만질 수 있는 최대의 찬스가 오고 있는데.
나는 이미 L회장을 만나기만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환상에 젖어 있었다.
“불러만 주시면 언제든지 찾아 뵙겠습니다.”
“음, 그럼 오늘 오후 4시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만나자.”
L회장은 불쑥 그렇게 통보하고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니 오늘이라니! 월요일이라 나는 출근을 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망설일 수가 없었다.
내 인생이 바뀔 수 있는 중대한 문제라는 간절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서 집안에 갑작스런 문제가 생겨 오늘 회사에 출근할 수 없겠다고 말하고 휴가를 냈다.
그리고 그 길로 공항으로 달려갔다.
다시 L회장을 서울에서 만났다.
그는 앞으로 6개월 후에 수백억 원의 자금을 투입하고 다른 사람들의 큰 자금도 함께 주식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아예 명동에서 증권사 지점 하나를 선택하여 나를 지점장으로 앉히겠다고 말했다.
증권회사에서는 대규모 자금만 끌어들일 수 있으면 지점장 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L회장은 나에게 명동에서 최고의 지점장이 한 번 되어보라고 말하면서 일단 매월 1천 5백만 원을 월급으로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금 1천 5백만 원이 든 쇼핑백을 나에게 곧바로 건네주었다.
그 순간 나는 솔직히 조금 망설였다. ‘무엇 때문에 이런 큰돈을 내게 선뜻 내어주는 것일까?
혹시 불법적인 주식거래에 나를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혹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L회장은 나의 이런 우려를 눈치챘는지 돈을 건네면서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받아. 앞으로 큰 돈을 만져야 할 사람인데……. 사람은 큰 돈을 보면 혹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지.
그래서 엉뚱한 생각 갖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주는 것이니까 염려하지 말아. 그리고 절대 불법적인 거래 따위는 안 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렇게 얘기하니 그 돈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L회장의 생각은 이러했다.
1994년 9월말 종합지수가 1,000포인트까지 올라가면서 1989년 4월의 최고점 1,000포인트도 돌파했기 때문에 이제 본격적으로 2,000포인트를 향해서 올라간다고 생각했다.
또 이 당시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각종 신문이나 방송에서 향후 주가가 1,500~2,000포인트까지 무난하게 갈 수 있다고 막 떠벌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대규모 자금을 주식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큰 자금을 투입하는 데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던 중
마침 그와 친하게 잘 알고 지내던 후배의 소개로 하루 면접(?)을 보고 나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 날 L회장을 만나고 내려온 후 나는 곧바로 고려증권에 사표를 제출했고 사표는 그 해 12월 6일 수리되었다.
L회장은 아주 주도면밀하게 일을 진행하는 것 같았다. 명동에서 증권사 지점을 하나 선택하는 데 무려 5개월에 걸쳐
명동소재 전 증권사의 약정규모, 지점장 영업특징, 큰손들의 분포, 고객들의 성향, 직원들의 자질 등을 최대한 상세하게 파악해서 보고하도록 했다.
이왕 할 바에는 자신의 마음에 맞는 지점을 선정하겠다는 생각이었고, 본격적인 자금을 6개월쯤 뒤에 투입할 계획이었다.
나는 우선 고려증권 명동지점에 자리를 하나 확보한 뒤 명동지역에 있는 증권사 지점 하나 하나를 샅샅이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약 27개의 지점이 있었는데 나는 매일 각 증권사 지점을 다니면서 고객인 체 하고 직원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현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매일 명동으로 출근하여 마치 내 안방처럼 휘젓고 다녔다.
그리고 매주 L회장에게 조사상황을 보고하면서 주가 전망을 담은 보고서도 함께 제출했다.
그는 이미 대규모 자금을 따로 관리하고 있었는데 그 보유주식에 대한 전망을 수시로 나에게 묻곤 했다.
그렇게 L회장과의 잦은 만남을 가지면서 명동 증권가를 드나들던 중, 나의 주식투자관(觀)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2) 정보가 먼저냐 주가가 먼저냐
1995년 5월 말경 L회장과 나는 함께 사우나를 하고 있었는데 그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김 지점장, 내일 삼미특수강(現 현대비앤지스틸)이 상한가를 칠거야.”
“회장님, 무슨 좋은 정보라도 있습니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빙긋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정보는 무슨 정보, 만들면 정보지. 여하튼 한 번 두고 봐.”
다음날 나는 정말 삼미특수강이 상승하는지 살펴보았다.
아침에 약간 오름세로 시작하다가 장 후반에 가서는 갑자기 상한가를 치는 것이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오후 3시, 장이 끝나자마자 L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무슨 좋은 정보라도 입수했는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 사람아 정보는 무슨 정보, 돈이 말해주는 거지.”
그것은 L회장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돈으로 삼미특수강을 대량으로 매수하면서 상한가를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돈이 말해 준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차!’하고 무릎을 쳤다.
이 말은 좋은 정보가 있어야 주가가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해온 나의 고정관념을 한 순간에 바꿔버렸다.
나는 혹시 하는 생각으로 이튿날 고려증권 명동지점에 가서 직원들에게 삼미특수강에 대해 물어보았다.
상한가를 친 배경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직원들은 확실한 건 잘 모르겠다면서 들리는 바에 의하면 매출이 대폭으로 늘어난다는 정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정보는 사실인지 아닌지도 잘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정보였다. 다시 말해서, 적어도
이번 삼미특수강의 경우에는 주가가 올라간 뒤에 ‘왜 올랐을까?’ 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아무거나 정보를 갖다 붙인 격이었다.
이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 그럴 듯한 정보로 둔갑하는 것이다.
물론 큰손이나 일부 작전세력들이 큰 자금을 가지고 주가를 고의로 끌어올린다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고,
또 그런 일은 증권사 직원들에게는 상식에 불과했다. 그래서 들리는 말이나 신문지상에 이런 말이 있어도 그 동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 L회장의 “정보는 무슨 정보, 돈이 말해주는 거지.”라는 말을 직접 듣고 주가가 강하게 오르는 것을 목격하게 되자
나는 무언가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했고, 이후로 주식에 대한 나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좋은 정보(호재)가 있으면 주가는 올라가고 나쁜 정보(악재)가 나오면 주가는 떨어진다.
따라서 앞으로 주가가 올라갈지, 떨어질지를 잘 예측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정보(호재, 악재)를 빨리 수집해서 분석을 잘 해내면 된다고 생각해 왔다.
즉 ‘정보가 먼저 있고 뒤에 주가가 따라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내가 새롭게 깨달은 것은 ‘주가가 움직이면 정보는 뒤따라온다’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가나 기관투자가 등의 큰손들 입장에서는 대부분 좋은 정보가 있으니까 매수를 하게 된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반투자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빨리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을 잘 한다 하더라도
고도의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큰손(외국인, 기관투자가, 개인큰손 등의 선도세력)을 결코 따라갈 수 없다.
또 주가를 움직이는 핵심 정보가 여러 가지 정보(수익성, 성장성, 안정성 등) 중에서 어느 것인지를 우리 일반들은 쉽게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정보 자체가 주가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대규모 자금으로 매수를 할 때 비로소 주가는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때 대규모 자금을 지닌 큰손이 어느 정보를 택해서 주식을 끌어올리느냐에 따라 주가는 올라가게 된다.
‘주가가 올라가는 데 반드시 이러이러한 정보가 있어야만 된다.’라는 법은 없다.
기업이 흑자가 날 때 주가가 올라간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꼭 ‘흑자가 나야만 주가가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엄청나게 적자투성이 기업이라도 ‘앞으로 흑자를 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가는 크게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 ‘앞으로’가 문제다. 한 달 후가 될 수도 있고 일 년 후 또는 그보다 훨씬 더 후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진짜 흑자가 날지 안 날지는 그때 가봐야 안다. 또 어떤 제약 회사의 경우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라는 이야기만 있어도
주가가 크게 올라가는 경우도 수없이 많다. ‘신약 개발’이라는 게 성공할지 안 할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판매까지는
수 년간의 임상실험 기간도 거쳐야 하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그 결과가 확실하지도 않고 기약도 없는 정보만으로도 주식은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지 않은가.
그야말로 ‘고무줄’이요 ‘엿장수 마음먹기 나름’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왜 그런가? 그것은 주식투자란 현재 나타난 가치뿐만 아니라 미래의 가치 역시 중요한 투자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미래란 누구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태가 아닌가.
이렇기 때문에 어떤 기업이든 주가가 올라갈 수 있는 ‘정당한 이유’란 항상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주가가 올라가면 어떤 식으로든 그럴듯한 정보를 갖다 붙일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좋은 정보가 있으면 주가는 올라간다’ 고 생각해왔다. 여기서 도대체 ‘좋은 정보’란 무엇인가?
알고 보면 ‘반드시 정보가 좋은 것이어야 한다’라는 뜻이 아니라 ‘현재 좋다고 생각되는 정보’이면 되는 것이다.
진짜가 되든 가짜가 되든 그것은 나중의 문제일 뿐이다.
또 ‘주가는 올라간다’라고 할 때 언제 올라간다는 뜻인가? 주가는 절대 저절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큰 자금이 투입될 때 올라갈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정보’를 가지고 누가 먼저 대량으로 이 주식을 사느냐에 따라 주가가 올라가는 시기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일단 주가가 올라가게 되면 애매한 정보는 좀 더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즉 주가가 올라가게 되면 ‘왜 올라가는가?’에 대한 정보는 얼마든지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주가가 올라가면 좋은 정보가 따라온다’가 되는 것이다.
‘주가가 정보보다 먼저다’하는 것은 주가와 경기싸이클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면 더 자명해 진다.
주가는 원칙적으로 실물경제가 뒷받침 될 때 상승하게 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경기싸이클보다 주가싸이클이 보통 6개월 정도 선행한다.
다시 말해서 경기가 바닥을 찍고 상승하기 약 6개월 전부터 주가는 이미 오르기 시작한다.
이것은 앞으로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큰손들이 6개월 전부터 미리 주식을 매수하기 때문이다.
결국 주가가 먼저 오르고 ‘실적이 좋아진다’는 정보는 나중에 나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일반투자자들은 상승초기에 주가가 올라갈만한 구체적인 정보가 안 나오기 때문에 쳐다만 보고 있다가 주가가 한참 오른 뒤에 가서야
비로소 기업실적이 좋아진다는 정보를 접하고 상승말기에 본격적으로 주식을 매수하게 된다. 반면에 큰손들은 이때 주식을 팔고 나가버린다.
그래서 월스트리트의 주식 격언에도 ‘강세 장세는 (일반투자자의) 비관 속에서 태어나, 회의 속에서 자라고,
낙관 속에서 성숙하며, 행복감 속에서 사라져 간다’ 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는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증권회사에 근무할 때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일찍 회사에 출근하여 여섯 가지가 넘는 신문과 복잡한 자료를 분석하고
미국, 일본의 친구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하며 주가가 올라갈지 내려갈지를 밤늦게까지 고민하지 않았던가.
결국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성질의 정보에 수많은 시간과 정력을 낭비해왔던 셈이 된다.
L회장은 삼미특수강이 상한가를 친 후 주가가 추가로 상승하자 이틀 후 팔아서 제법 수익을 남겼다고 자랑스러운 듯 나에게 말했다.
빠른 정보와 큰 자금을 지닌 큰손(외국인, 기관투자가, 개인큰손 등의 선도세력)들의 매매 행태가 모두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들도 자신들의 정보를 일반투자자들에게 공개하지 않고 매매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결국 L회장의 매매 행태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사정이 이러한데 일반투자자인 내가 사전에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일이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정작 주가를 올린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또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정보를 가지고 대량 매수를 했는데 말이다.
따라서 일반투자자가 수집하고 분석하는 정보란 뒷북치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주가를 끌어올리는 핵심정보는 큰손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여 주식을 매수할 때만 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식투자에 나설 때 정보를 잘 수집하고 분석해 내면 누구나 주식투자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주식시장을 하나의 ‘공정한 게임장’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인식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주식시장은 한마디로 말해서 완전히 ‘불공정한 게임장’이다.
생각해 보면 큰손들은 고급 두뇌의 전문가들을 고용하여 불철주야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할 뿐만 아니라
대규모 자금,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든지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
반면에 전문적 식견이 없는 일반투자자들이 접하는 정보는 큰손에 비해 뒤질 수밖에 없고 또 전혀 쓸모없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돈 빼앗기 싸움터인 주식시장에서는 정보와 돈이 바로 힘이고 큰손들은 힘이 센 강자이며 일반은 약자인 셈이다.
따라서 주식시장은 강자와 약자의 싸움터이며 일반은 약자로서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을 하고 있는거나 마찬가지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지금까지 해온 나의 주식투자 연구방법을 완전히 바꾸기로 결심했다. 이제 정보는 필요 없다.
소위 언론에서 전문가라고 떠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의미 없다.
정작 주가를 움직이는 것은 정보보다 돈이 우선인데, 그들은 대규모 자금을 지닌 실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가가 움직이면 정보는 따라올 수 있다.
따라서 주가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면 그 주식을 매매하는 큰손들의 의도(저가매수, 고가매도)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큰손의 움직임을 무엇으로 판단해 낼 것인가이다.
그것은 바로 주가와 거래량의 움직임을 표시해 놓은 차트를 보고 판단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하여 그 후 약 2년간에 걸쳐 연구한 결과 개발된 투자기법이 내가 정립한 ‘파워분석법’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L회장과 만난 직후부터 주가는 하락하기 시작했다.
1994년 11월 9일 1,145포인트를 최고점으로 종합지수는 계속 하락하여 1995년 5월말에는 무려 840포인트까지 떨어졌다.
주식하는 사람에게는 주가가 떨어질 때 일에 대한 의욕이 꺾이고 만사가 귀찮아진다.
L회장에게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앞으로 종합지수가 2,000포인트 이상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나에게 여러 번 자신있게 말해왔다.
그런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자 대규모 자금투입 계획을 철회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세 번 만나던 것이 1995년 4월 들어서부터는 한 달에 두세 번으로 줄어들었다.
그때 나는 “아차, 내가 너무 성급하게 생각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그리고 결국 1995년 7월을 마지막으로 L회장과의 관계는 끝이 나고 말았다.
이때 나는 “사람을 불러놓고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상황도 아니었다.
지난 6월에 L회장을 만났을 때 그의 안색이 너무 안 좋아서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잠시 병원에 다녀왔다고 말하면서
주식 때문에 너무 괴롭다는 말을 했다.
그가 직접적인 말은 회피했지만, 증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나의 경험으로 볼 때 굉장히 심각하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그가 처해 있는 사정은 대충 이러했다. 자금 운용이 여의치 않아 우선 이 증권사 저 증권사에 가지고 있던 많은 계좌에서 대규모로 신용매수한 것이
주가가 폭락함으로써 엄청난 손실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L회장은 증권사 지점 여러 곳에 많은 계좌를 터놓고 있었다.
94년 말에 L회장과 함께 여러 증권사의 지점장과 직원들을 함께 만났는데 그들이 모두 L회장의 계좌를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나로서는 너무 어이가 없어 눈앞이 아찔했다. 그 동안 금융권, 사채업자들에게 꼬박꼬박 지급하고 있던 이자를 어떻게 메꿔나갈 것인가.
그래도 증권사에 근무할 때는 대출금을 계속 연장하거나 이 금융권에서 빌리고 저 금융권에서 빌려 대처해 올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직장도 없기 때문에 만기 연장도 안 되고 당장 수입이 끊기게 되니까 매달 금융권에 내는 수백만 원의 이자가 큰 문제였다.
이 상황에서 다른 증권사에 재취업하기도 힘들었다. 두어 군데 말해봤지만 나이(만 40세) 때문에 힘들다는 것이었다. 방법이 없었다.
하기야 증권사에 그대로 근무하고 있었어도 결국은 부도가 날 일이었다. 이 때부터 모든 금융권의 대출금이 연쇄적으로 부도나기 시작했다.
이 참담한 현실 앞에서 하루하루가 너무나 견디기 힘든 고통스런 나날들이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겪어보는 부도사태였다.
휴대폰과 삐삐에는 은행, 보험회사, 카드사에서 연체이자를 독촉하는 연락이 시도 때도 없이 오고 있었다.
집에도 계속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아내가 노이로제에 걸릴 판국이어서 우선 집 전화번호부터 바꿔버렸다.
나는 그저 때가 되면 꼭 갚겠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이즈음 나는 깜깜한 동굴 속에서 실낱 같은 빛이라도 찾아보려는 심정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명동에서 남산 봉수대까지 오르내리고 있었다.
남산 봉수대에 올라 서울 시가지를 하염없이 쳐다보다가 내려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힘없이 남산 계단을 내려오면서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하던 중, 한 가지 단호한 결심을 했다.
‘주식 때문에 쓰러진 인생, 주식으로 일어나겠다’고……. 그리고 주식의 본질을 파헤치기 전에는 결코 집에 내려가지 않겠다는 배수진을 쳤다.
그 후 나는 일 년 넘게 서울에 머물면서 오직 주식 연구에만 몰입했다.
그 동안의 생활비는 다행히 매월 L회장이 준 것을 어느 정도 남겨 놓았기 때문에 그것으로 간신히 충당할 수 있었다.
3) 주식시장은 속임수
1994년 11월 9일 종합지수가 1,145포인트까지 치솟았다가 그 후 5개월간에 걸쳐 계속 하락했다.
드디어 1995년 4월 13일 종합지수가 890포인트까지 내려갔다.
그러자 견디다 못한 투자자들이 데모를 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명동의 소위 증권빌딩 2층에 있는 대유증권 객장에서 있다고 했다.
요즈음은 그런 모습이 없지만 당시만 해도 주가가 크게 떨어진다 싶으면 정부에 대해 주가부양책을 촉구하는 시위가 흔히 있었다.
대유증권의 객장에 가보니까 전광시세판은 꺼져 있는 상태에서 이제 막 구호를 외치려던 참이었다.
잠시 후 머리에 흰 띠를 두른 투자자들 두 명이 앞에 나가서 증시부양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자 앉아 있던 투자자들도 따라서 손을 들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객장 한편에서는 부양책을 촉구하는 서명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언제 어떻게 연락을 받았는지 방송국 카메라를 든 기자들과 신문기자들이 들이닥쳐 시위장면을 촬영하고 취재하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기자들이 달려올 수 있을까. 그것도 데모가 시작된 지 불과 5분도 채 되기 전에 말이다.
이 의문은 잠시 뒤에 풀렸다. 그때 내 옆에 있던 몇몇 사람들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친구들 또 하는구먼. 오늘 일당은 얼마씩 받았지?”
“이때다. 빨리 주식 사야돼.”
나는 시위가 끝난 후 이 사람들에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았다. 이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일부 큰손들이 주가가 크게 떨어지고
일반투자자들의 불만이 폭발할 즈음에 미리 주식을 사둔 뒤 몇몇 투자자들을 고용하여 일당을 주고 부양책 촉구 데모를 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오늘 데모를 주동한 사람들이 전에도 했던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데모 시작 시간을 미리 방송국이나 신문사에 연락해주면 기자들이 곧바로 뛰어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되면
지방에서도 비슷한 시위가 일어나고 그러면 정부에서는 이런 저런 부양책을 검토중이라거나 호재성 재료를 발표하게 된다.
설령 정부에서 부양책을 쓰지 않더라도 일반투자자들은 투자자 시위가 있게 되면 뭔가 부양책이 나오겠지 하고 주식을 매수하는 경우가 많게 된다.
이렇게 해서 주가가 반등할 때에 시위를 주동했던 큰손들은 팔고 나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다음날 매일경제신문 증권면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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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자, 증시부양책 촉구 서명운동
주식투자자들이 14일 오후 서울 명동의 증권빌딩에 모여 침체를 지속하고 있는 주식 시장의 부양책을 정부에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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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위가 있은 후 주가는 다시 반등해서 1995년 9월 1,020포인트까지 올라갔다가 1997년 초 다시 600포인트까지 하락했다.
이 반등장세를 이용하여 1995년 7월, 9월, 10월에 큰손들이 대량으로 매도해 버린 것을 차트를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결국 또 다시 개인투자자들만 물려버린 것이다.
나는 이번 일을 경험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지난 1989년 12월 12일 증시부양책 때도 그랬다.
1989년 4월 3일 증시사상 최초로 종합지수가 1,015포인트까지 올라갔다가 1989년 12월 12일 844포인트까지 하락했을 때
연일 투자자들의 시위가 이어지자 정부는 서둘러 부양책을 발표했다.
즉 1989년 12월 12일 정부는 재무부 장관의 특별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무제한으로 주식을 사겠다는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전무후무한 부양책을 발표한 것이다.
‘발권력’이 무엇인가? 돈 찍어내는 권한을 말한다. 다시 말해 무제한으로 돈을 찍어서라도 주식을 사주겠다는 말이다.
정부의 이 말에 일반투자자 누가 주식을 사지 않겠는가.
그 동안 의기소침해 있던 일반투자자들은 부양책이 발표되자마자 너도나도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자기 돈의 2.5배까지 주식을 살 수 있는
미수, 신용매수를 마구 해댔다.
그러나 12.12 부양조치 발표로 주가는 단 열흘 정도 상승 후 급락하기 시작하여 1990년 9월경에는 다시 종합지수가 560포인트까지 빠져버렸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무제한으로 주식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10여 일간 약 2조 7천억 원의 돈을 투입한 뒤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버렸다.
그리고 12.12 부양조치를 기다렸다는 듯이 증권사, 은행, 단자사, 보험사 및 정체불명(정치자금?)의 큰손들이 대거 물량을 팔아치웠다.
이때 일반투자자들이 신규 매수한 규모가 1조 원 정도였으니까 약삭빠른 세력들이 무려 3조 7천억 원의 주식을 팔아버렸던 것이다.
그로부터 약 10개월 뒤 1990년 10월 10일에 일어났던 통한의 깡통계좌 강제정리사건 때까지 주가 폭락으로 일반투자자들이 겪은 고통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내 고객 중 한 사람도 이때 자살했다. 결국 정부는 국민을 속인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한 때 주식시장에서는 12.12 부양조치가 정치자금이 빠져나가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나온 것이라는 루머가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나는 이 두 가지 사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명동에서 큰손들이 사전에 주식을 매수한 뒤, 일당을 주고 고용한 사람들로 하여금
부양책을 촉구하는 데모를 하게 함으로써 주가가 상승할 때 대량으로 처분하는 것은 일반투자자에 대한 명백한 속임수다.
또한 정부가 선의든 고의든 무제한으로 주식을 사주겠다는 12.12 부양책을 발표해 놓고 주가가 상승할 때 일부기관투자가, 큰손들이 대량 매도한 후
열흘 만에 약속을 어긴 것 역시 일반투자자에 대한 속임수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이런 현상은 비단 전체 장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별 종목마다 모두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작전세력이 주가를 조작하기 위해 고의로 좋은 정보를 유포해서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 이때는 명백히 속임수를 쓰는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인 투자가나 기관투자가들이 주식을 매수할 때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 때도 역시 속임수를 쓰는 거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이들이 어떤 주식을 매수할 때 그 주식에 대한 좋은 정보를 일반투자자들에게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주가를 상승시킬 수 있는 정보를 남한테 말하지 않고 혼자서만 알고 주식을 먼저 매수한다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일종의 속임수라고 할 수 있다.
매도할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혹시 하는 생각으로 서점에 들러 책을 살펴보던 중 199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이론인 『게임의 이론(Game Theory)』과
『고스톱 잘 치는 법』이라는 책을 접하면서 주식투자가 속임수라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게임의 이론은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복잡한 현상을 해명하고 결과를 예측하는 학문이다.
이 책에서, 주식투자는 상대방이 있는 게임인데 내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타인의 손바닥 안’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즉 주식투자란 심리전이며 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매수 또는 매도)할 것인가를 잘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상대방은 바로 우리 일반을 상대로 돈을 벌려는 큰손이며, 큰손의 상대방은 일반투자자들이다.
조금 심한 말이라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주식투자란 한마디로 ‘큰손이 정보를 이용하여 일반을 속이고 돈 빼앗는 게임’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상대방이 있는 모든 게임은 속임수가 기본이다.
예를 들어보자. 축구경기에서 차범근 선수가 공을 몰고 가는데 상대방 선수가 가로막게 되면,
차 선수는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또는 뒤로 모션을 취하면서 순간적으로 상대방을 속이고 비켜나간다.
패널티 킥을 넣을 때도 마찬가지다. 왼쪽으로 공을 차 넣는 모션을 취하면 골키퍼는 왼쪽으로 움직이게 되는데
이때 선수는 오른쪽으로 공을 차 넣어서 골을 성공시킨다.
우리는 보통 이것을 기술이 좋다, 개인기가 능하다라고 말하지만 실은 상대방 선수를 잘 속이는 기술이 뛰어나다는 말과 똑같다.
농구, 탁구 등 모든 경기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게임의 속성은 동일하다.
우리가 흔히 치는 고스톱도 마찬가지다.
‘고스톱 잘 치는 법’에 보면 ‘노름 10계명’이라는 게 있는데 그 첫 계명이 “노름 잘 하려면 많이 떠들어라.”이다.
친구끼리 고스톱을 칠 때 방구들이 뚫어져라 하고 심각하게 ‘팍 팍’ 치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런 친구들은 대개 돈을 잃게 된다.
반면에 맥주 한 잔 마셔가며 무슨 말이 그리도 많은지 할 소리 안 할 소리 온갖 이야기를 다 떠벌리며 치는 친구들은
얄밉게도 돈을 따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상대방 손에 있는 화투패를 읽어내느냐 못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심각하게 화투를 치는 친구가 어쩌다 팔(새 그림)을 한 장 건져가게 될 때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다.
이때 막 떠벌리고 있는 친구는 ‘이 친구 고도리 하려고 하는구나’ 하고 방어적인 고스톱을 치게 된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패를 상대방이 철저하게 인식하지 못하도록 떠들면서 화투를 친다.
결국 화투칠 때 떠드는 소리는 내 패를 숨기고 상대방 패를 읽어내려는 하나의 속임수이다.
물론 순수하게 재미로 떠드는 경우도 많지만 게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따라서 고스톱을 잘 치려면 상대방이 떠드는 말소리에 현혹되지 말고 상대방 패의 흐름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주식게임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주식게임에서의 속임수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정보다.
사실 주식시장에서 누구나 똑같은 정보에 똑같이 대응한다면 살 사람만 있거나, 팔 사람만 있거나 하여 매매거래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따라서 매매 순간에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현상이 반드시 필요하다. 즉 주식시장에서의 속임수는 필요악이자 본질적인 문제가 된다.
그렇다고 주가를 고의로 조작하여 일반투자자들에게 노골적인 피해를 주는 작전(속임수)이 용납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선의든 고의든 주식시장에서는 항상 속임수가 있게 마련이니까
우리 일반투자자들은 속지 않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착각현상은 바로 정보수집, 분석의 오류에서 발생된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일반투자자들의 정보수집, 분석은 느리고 부정확하다.
그러므로 일반투자자들이 정보를 접하거나 남의 말에 의존하여 주식투자를 하는 한 이 속임수에서 결코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매일 매일의 주가와 거래량 움직임은 큰손도 속일 수 없는 명백한 진실이다.
우리가 이러한 차트(주가, 거래량 움직임)를 유심히 관찰하게 되면 이 속임수는 얼마든지 피해갈 수가 있다.
1989년 12.12 부양조치 때도 큰손들이 대량으로 팔고 나갈 때의 모습이 차트에 이미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이 ‘주가가 정보보다 먼저’라는 인식과 ‘모든 주식거래가 속임수’라는 인식은
지금까지 가졌던 나의 주식투자관(觀)을 180도 바꿔버렸다.
그리고 이것이 ‘파워분석법’을 본격 개발하게 한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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